배경과 전환기
1990년은 대한민국과 소비에트 연방 간의 관계에서 중요한 전환기를 맞이한 일년이었다.
이 두 국가 간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적대적인 모습을 보여왔는데, 특히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비에트 연방이 북한에 진주하면서 한국을 친미 성향의 국가로 간주하고 적국으로 규정해왔다.
그러나, 1980年代 후반부터 소비에트 연방의 내외적 상황이 큰 변화를 겪기 시작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과 페레스트로이카
1985년,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소비에트 연방 공산당 서기장직에 취임하면서 소비에트 연방의 대외 정책이 큰 변화를 겪기 시작했다.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라는 개혁정책을 추진하며, 제1세계 국가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 정책적 변화는 대한민국과 소비에트 연방 간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초기 접촉과 협력
1980년대 후반, 대한민국과 소비에트 연방 간의 초기 접촉이 증가했다.
1985년, 대한민국에서 개최된 유도와 양궁 세계선수권대회, 그리고 복싱 월드컵에 소비에트 연방이 참여하면서 두 국가 간의 관계가 점차 개선되기 시작했다.
소비에트 연방은 1986년 4월에 서울에서 열린 세계올림픽연합회 총회에 국가스포츠위원장을 참석시켜 양국 간의 스포츠 협력을 강화했다.
또한, 사할린 한인의 대한민국 귀환 문제도 검토하기 시작했다.
1988 서울 올림픽과 북방정책
1988년 서울 올림픽은 두 국가 간의 관계 개선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소비에트 연방의 올림픽 참가는 한국과 소련 간의 오랜 앙금을 풀기 시작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노태우 정부는 1988년 7월 7일 특별선언을 통해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천명하면서, 북방정책을 추진했다.
이 정책은 소련과의 관계 개선과 국교 수립을 위한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극적인 수교 과정
1990년, 대한민국과 소비에트 연방 간의 수교는 극적인 과정을 거쳐 이뤄졌다.
당시 한국의 노태우 정부는 북방정책을 통해 소련과 수교를 추진하고 있었고, 소련도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를 통해 제1세계 국가들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추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련은 전통적으로 북한을 강력히 지지해 왔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노선 변화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소련은 초기에 1991년 1월 1일을 수교일로 제안했지만, 한국은 1990년 9월 30일을 수교일로 주장했다.
이때 북한의 무례한 태도가 한몫했다. 소련의 예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 외무상이 평양을 방문했지만, 북한의 문전박대에 가까운 대우를 받았고, 이로 인해 소련은 한국과의 수교를 앞당기기로 결정했다.
결국, 1990년 9월 30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45차 유엔 총회에서 한국의 최호중 외무부 장관과 소련의 셰바르드나제 외무상이 한·소 수교 협정에 조인하면서 공식적으로 수교가 성사되었다.
역사적인 의미와 영향
이 수교는 냉전의 시대사를 주도했던 소련과 그 피해국가인 한국 간의 역사적인 화해를 의미했다.
이는 국제정치적 의미와 영향이 심대했으며, 한반도의 평화구도 설정과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큰 기여를 했다.
한국은 이듬해인 1991년에 유엔 가입을 이루었는데, 그동안 한국의 유엔 가입에 반대하던 소련이 한·소 수교로 인해 더 이상의 반대를 할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후의 관계 발전
수교 이후, 두 국가 간의 관계는 급격히 개선되었다. 노태우 대통령은 소련을 방문하고,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제주도를 방문하는 등 정상외교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또한, 양국 간의 실질적인 협력 관계가 확대되면서 경제, 문화, 교육 등의 분야에서 협력이 강화되었다.
그러나, 소련이 1991년 해체되면서 한·소 관계는 한·러 관계로 승계되었다.
결론
1990년 9월 30일 대한민국과 소비에트 연방의 국교 수립은 한국 현대 외교사의 큰 전환점을 맞이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두 국가 간의 오랜 적대관계를 풀고, 한반도의 평화구도 설정과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큰 기여를 했다.
이는 한국의 외교 정책이 단순한 반공주의에서 벗어나, 다변적인 외교 노선을 추진하는 중요한 시발점이 되었다.
오늘날에도 이 사건은 한국과 러시아 간의 강한 외교 관계의 기초가 되고 있으며,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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