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RNsv_5 d3 oNg? si=MjNdDit_w0 N0 YGy-
초기 접촉과 성장
일본은 16세기 후반, 전국시대 동안 포르투갈 상인들과 접촉하며 천주교를 처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 시기, 다이묘들이 포르투갈과 무역을 하기 위해 천주교 포교를 허용하고 성당 건축을 지원했습니다.
초기에는 주로 사회에서 버림받은 빈민과 천민들이 천주교를 받아들였지만, 이후 유력한 다이묘들도 세례를 받고 개종했습니다.
예를 들어, 1580년대에는 신자 수가 약 10만 명까지 늘어났으며, 교토에 '난반지(南蠻寺)'라는 교회가 세워져 교토의 명소가 되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초기 박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한 후, 1587년 바테렌 추방령을 내림으로써 천주교에 대한 첫 번째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명령은 선교사들을 추방하고, 교회들을 파괴하는 것을 포함했지만, 히데요시가 포르투갈과의 무역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엄격하게 시행되지 않았습니다.
도쿠가와막부와 심화된 박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쇼군이 된 후, 특히 1612년과 1614년에 에도 막부는 전국적인 금교령을 선포했습니다.
이 금교령은 외국인과 선교사들을 추방하고, 모든 성당들을 파괴하며 일반 신자들도 신앙의 포기를 강요했습니다.
도쿠가와 이에미츠 시기에는 이러한 탄압이 더욱 강화되었으며, 외국인이든 일본인이든 가리지 않고 처형과 고문이 행해졌습니다.
이 시기 동안, 수많은 순교자가 발생했으며, 일본 내에서 외국인 세력을 근절하기 위해 쇄국 정책이 시행되었습니다.
고문과 순교
에도 막부의 박해는 극도로 혹독했습니다.
신자들은 다양한 고문을 받았으며, 가장 유명한 고문 방법 중 하나는 아나츠 루시라고 불리는 방법으로, 신자들을 구덩이 속에 거꾸로 매달아 놓고 피가 방울방울 떨어지게 하여 천천히 죽게 만드는 방식이었습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후미에(踏み絵)라고 하는데, 이는 예수나 마리아의 그림을 밟게 하는 방식으로 신자들을 색출하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이 방법은 정신적인 차원에서 신자들을 괴롭히는 가장 비인간적인 탄압 방법 중 하나로 평가됩니다.
카쿠레키리시탄
에도 막부의 탄압으로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신앙을 숨기며 살아야 했으며, 일부는 카쿠레키리시탄으로 알려진 평신도들끼리의 전승만으로 신앙을 유지했습니다.
이들은 200년 이상 신앙을 보존하며 살아남았고, 1865년 프랑스 선교사들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카쿠레키리시탄들은 본래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리와는 많은 부분이 달라져 전해지게 되었으며, 이들의 신앙은 음지로 숨어 들어서 유지되었습니다.
카쿠레키리시탄들은 불교와 유사한 형태로 신앙을 유지했습니다.
예를 들어,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는 의미에서 제작된 마리아 관음상이나, 라틴어 기도문을 음차 해서 염불과 유사한 형태로 읽는 독특한 기도문인 오라쇼를 암송하는 등, 불교와 유사한 형태로 전례의 형태가 바뀌었습니다.
또한, 성직자를 일본으로 초빙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자체적으로 성직자를 양성할 수준도 못 되었으므로, 가쿠레키리시탄들의 공동체는 조가타(일본어: 翁方)라는 장로가 이끌었습니다.
메이지 유신 이후
메이지 유신 이후, 1873년에 일본 정부는 종교의 자유를 선포하여 기독교 신자들의 활동이 합법화되었습니다.
이로서 대부분의 가쿠레키리시탄들이 로마 가톨릭 교회로 돌아왔으나, 일부 신자들이 이를 거부하고 밀교화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이렇게 끝까지 가쿠레키리시탄으로 남은 이들을 하나레키리시탄이라고 하며, 일본 내에서 1990년대까지 존속하였으나, 1991년에 대부분 사멸되었습니다.
결론
일본에서의 기독교, 특히 천주교의 낮은 비율은 주로 역사적인 박해와 탄압에 의해 설명될 수 있습니다.
도쿠가와막부의 금교령과 이후의 혹독한 탄압,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한 수많은 순교자들이 일본에서 기독교의 확산을 막았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오늘날 일본에서 기독교 신자들이 적은 비율을 차지하는 주요 이유입니다.
현재 일본의 가톨릭 신자 비율은 인구의 0.3%에 그치고 있으며, 오랜 박해의 영향으로 여전히 개인 신앙 활동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리진-사물의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재미로보는 세탁기의역사 (0) | 2024.11.03 |
---|---|
프린터의 역사와 발전 과정 (12) | 2024.11.03 |
AMD의 역사(55분 순삭 Ver.) (10) | 2024.11.02 |
우리는 언제부터 도시락을 먹었을까?|밥상을 들고 배달한 이유 (4) | 2024.11.02 |
한국 맥주는 어떻게 발전해 왔을까? (12) | 2024.11.01 |